▶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꿈과 행복을 디자인해 온 길

그리운 이름 아버지

일제 강점기던 1921년에 전북 정읍군 입안면에서 태어나신 아버지는 전북대학교를 다니신, 당시로는 드물었던 인텔리셨다. 그러나 양학뿐만 아니라 구학문에 뜻을 두시고 독학으로 한학과 한의학을 공부하셨고 노년에는풍수지리까지 섭렵하셨다.

한학에 조예가 깊으신 아버지께서는 손수 시를 지으셔서 우리집 가훈으로 삼으셨고, 우리 7남매는 어린 시절 한글을 떼자마자 이 시를 외우고 아침마다 가훈을 외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어린시절에 뜻도 모르고 그저 외워댔던 7남매는 이제 나이가 들면서 그 안에 인생의 답이 들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버지는 이 시를 통해 검소하고 만족할 줄 아는 생활, 인내할 줄 아는 겸손함이 행복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는 길임을 알려주셨다.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이 시는 내가 기초의원, 광역의원, 자치단체장, 그리고 국회의원으로 공직생활을 하면서 길을 잃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나침반과도 같다.

아버지의 시는 수십 년 째 매일 읽어도 전혀 그 뜻이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읽을 때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자식들에게 남겨주고자 하신 깊은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 아이들도 이 시를 외우며 컸고, 또 매일 가슴에 새기고 있다. 아버지의 이 뜻은 아마도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전해질 것이다.

1995년 7월, 아버지는 우리 7남매 곁은 떠나셨다. 내가 도의원에 당선된 직후였다. 1990년 고희연을 대신해 보내드린 여행을 다녀오신 후 직장암을 선고 받은 지 5년 만에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다.

형제애로 똘똘뭉친 7남매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나는 아버지께 약속을 했다. 아버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자식으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그 약속은 아버지와의 약속이자 나 스스로 다시 한 번 다잡는 다짐이었고, 내 삶에서 그 어느때 보다 경건하게 마음에 새긴 다짐이었다. 나는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지치고 쉬고 싶을 때 마다 식탁 옆에 걸린 아버지의 시를 보며 다시금 힘을 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