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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행복을 디자인해 온 길

일잘하는 소문난 명시장(市長)으로 이웃 지자체와 협력

지방의회가 부활한 해가 1991년이다. 91년 3월 27일 초대 지방의회선거에서 광명시 시의원을 시작으로 1995년도 경기도 도의원, 1998년, 2002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2.3기 광명시장에 당선되었다.

애초에 위성도시로 만들어진 광명시는 잘 계획된 도시가 아니었다. 70~80년대 광명은 구로공단 근로자들이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1975년이 10만명이던 인구가 30만명을 넘어서면서 무허가 건축물이 난립하게 되었고, 도시의 기반시설이 제때 갖춰지지 않아 주거환경이 몹시 열악한 도시였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교통, 교육, 복지, 상하수도 시설과 같은 도시의 필수 기반시설이 매우 부족했다.

광명시장이 되고나서 첫 번째 시작한 일이, 택시사업구역 통합이었다. 당시 광명시민들이 살면서 가장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택시 타는 일이었다.

서울이나 영등포에서 택시를 타서 광명에 가자고 하면 승차거부를 당했다. 광명시민 중에서 택시기사하고 안 싸워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구로, 금천과 광명을 묶었다.

서울의 택시는 광명에 들어오게 만들고, 광명택시는 원칙적으로 구로.금천만 나가는 것으로 해서 영구통합을 만들어 냈다. 광명시민들을 대단히 행복하게 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만든 이유가 또 있었는데, 당시 지하철 7호선 개통이 1년 6개월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광명시에 택시가 6백여대 정도 있었는데, 7호선이 개통되면 광명시 택시업계가 거의 도산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인식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택시사업구역 통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그 일을 첫 번째로 했다.

또한 당시 큰 민원이 두 가지가 있었다. 광명시 광명5동 경계 400미터 전방에 구로구청에서 400톤규모의 소각장을 짓겠다고 해서 집단 민원이 있었다. 또 하나는 현재 경륜장이 들어있는 부지인데 그 부지에 하수종말처리장을 짓기로 해서 예산을 확보해 놓은 부분이 있었다.

이러한 집단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구로구 쓰레기를 받자고 제안을 했다. ‘대신 구로구 쓰레기 소각장을 짓지 말아라. 그리고 광명시 하수를 서남하수종말 처리장에서 처리를 해달라’ 그래서 소위 환경기초시설간의 빅딜을 성사시켰다. 현재 국내 최초의 환경기초시설 빅딜을 성사시킨 사례가 중학교 2학년 사회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로 첫 번째 사례를 만들어 냈다.

그 사례 이후 많은 지자체들이 환경기초시설 빅딜을 해서 합쳐서 짓고 하는 일들이 많이 만들어 졌다.